지구의 절망을 치료하는 사람들 국경없는 의사회 이야기- 10점
댄 보르토로티 지음 / Hantz / 2007년 10월
읽은 날: 2008. 11. 13 - 2008.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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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읽었던 '나는 아프리카로 간다'국경없는 의사회에서의 경험을 주관적으로 서술했다면, 이 책은 국경없는 의사회(MSF)의 역사와 그들의 역할과 의미, 그 속에서 겪을 수 있는 위험, 고민, 문제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자칫 '굉장히 지고, 보람이 가득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원조 활동은 자신만의 확고한 가치관과 함께, 예상하지 못했던 정신적 충격과 스트레스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내전이 있는 곳에 간다고 하여 모두가 위험한 것은 아니며, 언제나 목숨이 위협받는 것도 아니다. 책에서도 말하길, 대부분의 경우가 총알이 빗발치는 곳에서 일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NGO는 누군가에게 훌륭한 표적이 될 수 있기에 확신할 수는 없다.

내가 두려운 것은 '정신적 스트레스'이다. '난 강한 사람이야. 이런 것쯤이야.'하면서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약해졌는지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한 휴식과 함께 때로는 정기적인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아주 끔찍한 장면을 목격했거나, 공포스러웠던 환경에 무감각해 한다면.

책 속에 '150명의 사람들이 내 앞에서 도끼에 찍혀 죽는 것을 봐야만 했다.'라고 나오는 부분이 있다. 나는 내전이 일어나고 있는 곳에, 총소리가 들리는 곳에, 학살의 흔적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 속에 두발로 멀쩡히 서있을 수 있을까? 기아로 죽어가는 수천명의 사람들을 보면서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내가 바라보는 세상과 화려한 현실사이에 괴리를 느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는건 아닐까? 바뀌지 않는 세상에 대한 답답함과 무기력함, 인간의 잔인함에 염증을 느끼지는 않을까?


<책 속으로..>

다른 국제 원조 단체들과 구별되는 MSF의 특징으로는 재정적 독립을 위한 노력과 증언 및 고발의 정신을 들 수 있겠다. NGO의 재정적 독립성은 특히 전쟁과 같이 정치적으로 복잡한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중요한데 이 전쟁에 연루되었거나 해결의 책임이 있는 정부가 기부자일 경우 이 정부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이나 활동의 자유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때로 인도주의 구호 활동은 전쟁의 잔인한 측면을 가리고 불만을 무마시키기 위한 기부국들에 의해 교묘히 이용되기도 한다. 또한 기부국들이 자신들에게 전략적으로 유리한 나라에서 구호 단체들이 일하기 원할 때에는 지구상의 다른 나라에서 더 심각한 인도주의적 위기가 있어도 돕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따라서 이런 인도주의 구호 활동의 부작용들을 최대한으로 줄이기 위해 재정적, 정치적 독립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MSF의 노력은 다른 구호 단체들과 크게 구별되는 점 중의 하나이며 의미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8쪽)


지라르드는 인도주의 원조 일을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지 못한다. "한두 명의 여피족들이 와서 '나는 돈도 벌만큼 벌었고 큰 집도 하나 마련했소. 내 삶은 완전히 파멸했지만 MSF 미션을 떠나면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라고 말한 적이 있죠. 저는 그런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인종 학살의 현장에 가면 더 행복해지시겠습니까? 돌아와서는 매일 아침 뜨는 태양을 보며 미소 지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1994년 우리가 르완다로 보낸 자원자들은 아직도 일주일에 한 번은 그 몸서리쳐지는 장면을 다시 봅니다." (86-87쪽)

현실에 귀 막으려 할수록 난 다른 사람들에게서 어떤 이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루빨리 피하고 싶었고, 그것이 도망이든 아니든 나에겐 꿈이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니 난 오히려 그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고 있었나보다. 인간의 가장 밑바닥에 깔려 있는 증오와 욕심을 만나야 하고, 가장 잔혹하고도 고통스런 장면을 만나야 한다. 문득 내가 정반대의 길로 걸어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크리스타 훅은 이 논쟁이 근본적인 인도주의 이념과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말라리아에 걸린 사람을 한 명 치료한다면 좋은 일을 한 것입니다. 말라리아가 평상 수준보다 심각한 난민 캠프나 재난 상황에서 치료를 하면서 '어차피 이 일을 내년에는 못할 테니 올해도 하지 않겠어.'라고 말하는 사람은 한 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죠.

누군가에게 '미안해, 너를 구할 방법을 가지고 있지만 내년에는 아마 못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싫어.'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로 잘못된 것이죠. 우리는 내년에도 치료가 가능하게끔 노력하겠지만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을 보장하는 게 MSF의 일은 아닙니다. 이것은 그 나라의 몫이죠.

종종 우리는 과거 개발 현장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향후 10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10년이 흐르면 백신이 개발될지도 모르죠. 단지 올해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자는 겁니다. (190쪽)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만 같은 일 앞에 당신은 충분히 무기력할 수 있다. 사람들을 치료한 뒤 집으로 돌려보내면서도 이내 다시 병원을 찾아올 거란 생각에 그 의미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어차피 되풀이 될 거라고 해서 지금 내 앞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그대로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을 것이다. 

물음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아닌 가장 중심에 놓인 원인은 무엇일까? 그리고 어떻게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 생각해봐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MSF는 사람들이 어디론가 떠날 수 있도록 준비를 잘 시키죠. 그리고 당신도 자동적으로 그렇게 됩니다. 당신은 '좋아, 나는 새로운 문화와 장소로 떠날 준비가 되었어.'라고 생각하며 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어느 누구도 집으로 돌아올 준비가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죠. 집이니까요.

저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던 아제르바이잔에서 9개월 동안의 미션을 마치고 돌아왔었죠. (중략) 고모가 말하는 말도 듣지 못할 정도로 놀랐어요. 길은 정말 매끄러웠고 수도꼭지를 돌리면 뜨거운 물이 나왔죠. 이것은 정말 마법이었어요." (중략)

"제가 MSF에서 처음 훈련을 받을 때 '새 냉장고 증후군'에 대한 농담을 들었습니다. 미션을 떠난 후 집으로 돌아와서 가족과 저녁식사를 하며 미션에서 본 일, 부패, 사망자, 즐거웠던 일들에 대해 얘기하려 하면 엄마가 쳐다보며 말하는 거죠. ', 멋지다. 내가 새 냉장고를 샀다고 얘기했니?'" (246-248쪽)

약 4년 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의 내 기분이 딱 이랬다. 단 2개월이었지만 여행 후 식구들과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것도, 부모님의 너무나 일상적인 대화를 듣는 것도 어색할 정도였다. 하물며 전쟁과 기아가 만연한 곳을 다녀왔을 때는 어떠했을까. 더군다나 사람들에겐 제3세계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줄 여유 따윈 없으니..


"제 주위의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제가 살아온 삶과 다르다고 느낄 때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소비하는 것으로 정체성을 세우죠. 모든 이들이 결혼을 하고 집과 차를 사지만 저는 아니죠. 궁금해지기 시작합니다. '내가 이런 일들을 해야 해? 뮤추얼 펀드를 사야 해?' 급기야는 '맙소사, 나는 잘못하고 있어. 뒤쳐지고 있는 거야.' 하는 공포를 느끼게 됩니다. 현실을 도피하는 노숙자와 거의 다를 바 없게 됩니다. 그렇지만 단지 하루뿐이었죠." (250-251쪽)

지금의 내가 이런 상태다. 공포를 느끼는 건 그만두기로 했지만. 참 혼란스럽고 그래서 괴로웠던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은 꽤 괜찮아졌다.


국경없는 의사회가 세계를 구할 수는 없는 일이며 오래 전에 그럴 수 있는 척 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데이비드 몰리는 말한다. "우리 모두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죠. 우리는 더 정당한 세상을 보고 싶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만 집해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순하고 작지만 심오한 일이죠."

이것은 대서양에 떨어지는 물 한 방울 이상의 것이다. 이것은 구조선이다. 배가 가라앉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생명을 구하며 더 중요한 것은 희망을 약속하는 일인 것이다. (292-293쪽)




'무소유'에서 였나.. 좋은 책이란 읽는 도중 몇 번이고 덮게 되는 책이라 했다. 생각해봐야 할 것이 많아 읽으면서도 수시로 곰곰히 생각해봐야 했으니,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나에게 좋은 책이었다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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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ri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