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트 앞에 침낭을 깔고 누워 일기를 쓰고, 하늘을 보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시간이 정말이지 행복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피곤함에 지쳐 눕는게 되어버렸지만..



28일, 일요일.
저녁 6시가 넘어 캠프장에 도착해서는 이미 와있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곤 텐트를 하나씩 배정받았다. 꺄오! 이게 몇년만의 텐트 생활이란 말인가! 튜브식으로 된 매트리스와 자그만 텐트가 불편하긴 했지만 꽤 마음에 들었다. 드넓게 펼쳐진 잔디밭은 또 어떠했다구! (축구 골대가 4개나 있었다!)

워크캠프 참가자는 영국인이 총 17명,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은 8명, 그 중 유럽 밖에서 온 사람은 나 하나. 사실 7명 정도만 이마우스 커뮤니티 밖에서 오고 나머지는 다른 지역 커뮤니티에서 일하는 컴패니언이었다. 컴패니언은 라르쉬의 레지던츠처럼 커뮤니티에서 생활하고 하루에 몇시간씩 일을 하면서 약간의 보수를 받는 사람들을 말한다.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살 곳이 없어진 사람들이 커뮤니티의 구성원으로 지내고 있었는데, 영국뿐만 아니라 다른 유럽국가에서도 많이 오는 것 같았다. 내가 본 사람들만 해도 프랑스, 스페인, 폴란드 등등 꽤 많았다. 하지만 커뮤니티에서 지내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지내고 있다했지만..


새벽 4시 기상, 그리고 일출을 맞이하다


캠브리지에서의 고단한 하루를 보낸 터라 많이 피곤했다. 첫날이기에 커뮤니티를 한바퀴 돌아보는 걸로 끝내곤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잠자리가 바뀐 탓도 있지만 야외에서 자는 것이기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낮에는 무척 더웠지만 밤에는 몸이 으슬으슬할 정도로 추웠다.


29일, 월요일
새벽 3시, 괴상한 고양이 울음소리와 바람소리, 빗소리, 개소리(;;)까지 들려오는 바람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아침 6시는 된 듯 했는데 시계를 보니 아직 새벽 4시. 이놈의 시계가 또 고장났나... 싶었는데 아직 해가 뜨지 않은 걸 보니 정상인 것도 싶었다. 몸이 어찌나 찌뿌둥하던지.. 1박 2일이 생각나면서 참 대단하단 생각을 했다. 큭.

'오, 마이, 갓. 오, 마이, 갓!'
아침에 샤워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마구 내뱉었다. 새벽 4시, 여전히 쌀쌀한 가운데 뜨거운 물로 몸을 녹이니 그렇게 황홀할 수가 없었다. 내 최고의 핫샤워였다! 허나 이내 문제가 발생했다. 물이 끊겼다. -_- 커뮤니티내에서 한번에 쓸 수 있는 물의 양이 정해져 있어서 캠프에 있는 동안 '지금은 물이 없다'는 말을 몇번이나 들어야했는데, 처음 온 내가 그것도 첫날에 뭘 알았겠나. 속옷 빨래를 먼저 한 덕분에 머리를 못 감은 채 나올 수 밖에 없었다. 크크크큭. 5시쯤 다시 가봐도 여전히 감감무소식. 그래서 그냥 포기하곤 본의 아니게 일출을 구경했다. 장관 중의 장관이었다. 어찌도 그리 아름답던지!! 모두들 잠든 시각, 혼자 일어나 일출을 보며 멍을 때리기 시작했다. 라르쉬 생각이 났다. 또 누군가가 생각났다. 여기 있는 동안 라르쉬에서 생활하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참이다.




여덟시에 아침식사로 시리얼을 먹곤 9시 15분 전 간단하게 회의를 가졌다. 라르쉬에선 팀미팅이라도 가질라치면 기본이 2-3시간인데 여기선 딱 15분이다! 너무 좋다! 키키키키키- 첫날이기에 간단하게 자기소개 한번! 오늘 내가 맡은 분야는 분류작업. 위 사진에서 보이는 텐트안에 박스가 한가득이었는데 같은 것끼리 골라 번호를 매기는 작업이었다. 어떤 창고에서 발견한 것들이라는데 쓸만한 것을 팔 계획이란다. 오늘 함께 한 일꾼들은 던, 앨리스, 마크, 데이브.

내가 들은 것과는 달리 영국 날씨는 기가 막혔다. 누군가가 그랬다. '초콜릿 타임!'이라고.. 하아.. 초콜릿이 다 녹아 없어질만큼 더웠다. 비정상적으로. 게다가 천막안은 훨씬 찜통이었다. 그나마 그늘에 있으면 시원해져서 종종 왔다갔다 했지만 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점심 후 다시 일하러 돌아가는데 그저 막막할 뿐이었다.

항상 누군가와 처음 만날 때면 무슨 얘기를 해야할까 고민하게 된다. 그래도 지난 3개월동안 아일랜드에 있으면서 많이 적응했는지 처음 라르쉬에 왔을 때보단 많이 수월했다. 언어적인 문제는... 뭐..

저녁엔 Chapel에 모여 2시간여 동안 Solidarity에 대해 토론을 했다. 책상 4개를 돌아가며 4개의 질문에 대해 각자 의견을 나누는 형식이었다. 짧게나마 내 의견을 말할 수 있던 걸 다행으로 생각했다. 큭큭. 책상 앞에 놓여진 초콜릿에 행복해하면서.. 


회의를 갖고 차를 마시던 텐트 안 모습 / 둘째날 일하던 곳



30일, 화요일

어제보단 잠자리가 편했다. 5시인가 6시에 일어났던 것 같다. 오늘은 E.V.C(Emmaus Village Carlton)라고 물건을 모아둔 건물 안에서 쓸만한 것들을 찾아 샵에다 내놓는 작업을 했다. 함께한 일꾼- 클레먼타인, 벤, 앤디, 앨리스. 앨리스는 Bistro(작은 레스토랑)에서 계산원으로 일하고 나와 클레먼타인은 세라믹 방에서 쓸만한 걸 골라 건너편 건물에 위치한 샵에다 옮겨놓는 일을 했다. 건물안은 바깥과 달리 서늘한 편이라 일 할만 했다. 휴우.

3시가 넘어선 할일이 별로 없었기에 채플로 가서 페인팅하는 걸 도왔다. 금요일에 있을 Northampton Market을 위한 것이였다. 비디오 테잎으로 도미노를 만들었다지. 그 위에 주사위 그림을 그려야 했는데 클레먼타인이 풀을 이용해 그리기 시작했다. 점 하나, 둘, 셋.. 점 여섯개를 찍는데 뭔가 그림이 이상했다. 나중에 타라가 와서는 그녀에게 '주사위가 1부터 6까지 있어야 하는데 6이 없네? 뭐 크게 문제될 건 없지만.' '여기 6 있잖아요?' '6이 어딨어, 이거 점 9개잖아!' 어쩜 그걸 모를 수가 있었는지. 뭔가 이상하다 했지만 점이 9개나 되는 줄은 미처 깨닫지 못했다. 타라 말을 듣고서야 알아차리곤 어찌나 웃었는지..!


오늘 저녁엔 물 관련 영상을 시청했다. 게다가 시청 후엔 시험까지 쳤는데 무슨 교양 시험보는 기분이 들었다. 진----짜 어려웠다. 35개 문제에 다들 10개 언저리로 맞혔던 것 같다. 하하. 난 내 옆 텐트 아저씨걸 채점했는데 맞은 개수가 아니라 틀린 개수를 적어서 주는 바람에 착각을 해서는 그 분이 일등이 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했다. 트로피까지 받았는데.. 이 사실은 아벨리나와 나, 그 분만이 알거다. 하하하.

시험지를 건내는데 아벨리나가 보고선 ' 마이너스 21이라고 쓴거야?' '응,, 왜?' '맞힌 개수를 써야지!' '그게 그거 아닌가?' 난 이때까지만 해도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다. 그 분이 트로피를 받는 걸 볼때까진.. 차마 말은 못하겠고 둘이서 킥킥킥 웃어제낄 뿐이었다..



Bistro 한쪽 구석에 위치한 책방. 음식 뿐만 아니라 세라믹, 장난감을 파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밖에서 바라본 모습


문제의 도미노



7월 1일, 수요일
오늘도 E.V.C다. 어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세라믹이 아닌 창고에서 일했다는 것! 이마우스엔 자원봉사를 하러 오시는 어르신들이 꽤 있었는데 옷 창고에서의 아주머니들을 보자니.. 물건 고르는 아줌마의 모습은 영국에서도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부받은 옷과 장신구가 비닐봉지에 가득있어서 그 중 팔 수 있는 것들만 종류별로 모아두는 일을 했는데, 아주머니들은 자기 사이즈에 맞는 것들을 찾느라 상당히 분주해보였다. 거울 앞에서 입어보고 신어보고, 다른 방 아줌마, 아저씨들이 와서 자기한테 맞는 티셔츠를 찾는 다는 둥.. 물건을 샵에 내놓기 전 쓸만한 것들의 상당수가 그 분들 손에 들어가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점심 땐, 캠브리지 커뮤니티에서 직원분들이 오셨다. 채플에서 페인팅을 했는지 옷이며 머리카락 여기저기 하얀 페인트가 묻어있었다. 워크캠프 지원자를 담당하신 분도 오셔선 같이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상당한 미모를 가진 여자분이었다.


클레먼타인, 아벨리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들도 나처럼 워크캠프 후 런던에 간다는 얘기를 들었다. 영국 오기 전 카드 결제가 안되서 못했던 것도 다행히 여기서 할 수 있었다. 꺄하~ 인터넷으로 사면 아침 7시 반차에 펀페어로 단돈 5파운드에 갈 수 있다고 말해주니 살 때 같이 사잔다. 아벨리나와 나 둘다 카드가 없기에 타라의 카드를 빌려서 결제하기에 성공! 으히히. 클레먼타인은 토요일에서야 따로 결제를 했는데 그새 값이 올라서 6파운드에 구입했단다. 여행은 따로 하겠지만 런던행을 함께 할 동행이 생겨서 참 좋다!



내가 사랑했던 풍경 하나




 

Posted by Bori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