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글이 무척 깁니다..


7월 3일, 금요일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워크캠프가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피곤이 쌓이긴 했는지 6시 반, 로라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겨우 일어났다. 평소 일찍 일어나던 내가 늦잠을 잤다며 박수를 치던 로라. 하하. 오늘 아침식사는 1시간 앞당겨진 7시. 8시에 노탬튼으로 출발해야 했기에 7시 45분에 회의를 갖곤 서둘러 길을 나섰다. 1시간 뒤, Northampton Market에 도착해 소파와 탁자 등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어느 쇼핑몰 앞에서 자그맣게 마켓이 열리고 있었는데 이마우스는 월드카페(차+케익), 기부받은 물건을 파는 가게, 직접 의자를 꾸밀 수 있는 공간, 장난감 등이 있는 어린이를 위한 공간 등 4군데로 나누어 일을 진행했다.


 간판 만들기 'Decorate your own chair here!'


소파와 탁자를 세팅하고 각 장소를 사람들에게 쉽게 알리기 위해 큰 종이 위에 각각의 사인을 그렸다. 아침부터 날이 안좋았던터라 바람이 불고 가 조금씩 내렸다. 천막위에 걸어놓은 종이간판이 바람에 날리고 찢겼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마켓에 왜 도미노, 볼링, 의자 리폼 공간을 만들었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이마우스와 상관은 별로 없는 것 같고.. 그냥 놀이 공간을 만들어주기 위한 것이었나? 


 주홍모자를 쓴 분의 그림 실력이 대단했다. 한참을 슥-슥 그리더니 꽤 마음에 들었는지 약간의 기부금을 내곤 의자를 들고 집으로 가셨다는.. :) 


마켓 상인은 근처 카페에서 음료를 무료로 먹을 수 있다기에 아벨리나와 같이 가서 핫초코 한잔을 들고 돌아왔다. 점심은 커뮤니티에서 싸온 샌드위치였는데 부실 그 자체! 워크캠프에서 마음에 들었던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음식! 요리하신 분은 꽤 좋은 사람 같았으나 음식은.. 하하. 6일에 5일은 파스타만 먹은 것 같다. 그리고 아벨리나가 그랬지. '영국 음식은 Rubbish야!'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던 자브.

쇼핑센터에 있는 화장실에서 돌아온 아벨리나. 그곳에서 이미지 메이킹, 메이크업, 마사지를 무료로 받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서 내게 잠시 쉬는시간을 갖겠노라 전하곤 다시 유유히 사라졌다. 나도 나중에 같이 따라가서 어깨 마사지를 받고 돌아왔는데 좋은 향기와 함께 몸이 나른해져서 좋았다. 너무 빨리 끝나서 아쉬웠을 뿐.





무대 위에 올라간 김에 사진한장 찍어주심


1시 반쯤 이마우스 대표와 함께 노탬튼 지역 신문기자 몇명이 마켓에 왔다. 워크캠프 참가자들도 같이 사진을 찍길 원하기에 아벨리나와 나도 소파에 한자리씩 맡아 얼떨결에 사진에 찍혔다. 2시 반쯤엔 밴드공연을 하던 무대에서 그 분의 짧은 연설이 있었다. 이마우스와 그 역사, 오늘 마켓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와 함께 워크캠프에 대해서도 소개를 했다. 

아침에 마켓에 도착해서 타라가 말하길, 이마우스 대표가 와서 연설을 할 때 워크캠프 참가자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할 수도 있는데 괜찮겠냐는 것이었다. 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호르헤는 단호히 'No', 그 밖의 사람들은 흔쾌히 'Yes!'를 외쳤다. 근데 막상 인터뷰를 요청할 때 그 주위엔 나와 로라밖에 없었다. '인터뷰 한다고 했던 사람들 다 어디간건데! 악!!!' 

빨리 올라가라는 떠밀림에 어쩔 수 없이 무대위로 올라갔다. 아무말 안하고 그냥 서있기만 해도 된다고 했던 누군가의 말과는 달리 자기소개를 시키는 바람에 어벙벙벙하게 마이크를 잡았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그 분이 김치에 대해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땅 속에 몇 개월씩 묻어두곤 한다니 사람들이 다들 '진짜!?'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제대로 알고 계셔서 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내가 소개할 뻔. -_- 나중에 아일랜드에 돌아와서 타라의 메일을 받아보니 지역신문에 글이 실렸단다. 가운데 앉는 바람에 내 얼굴도 나왔다. 허허. 즈질이지만 기념으로 올려본다. 내가 또 언제 신문에 나와보겠어?



사진은 최대한 작게. 큭큭. 무대에 올라가라고 등떠밀어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받긴 했지만, 그 후로 집에 돌아갈 때까지 마이크 잡은 소감이 어땠냐는 얘기를 들어야했다. 영국인 속에 동양인은 나밖에 없었다며 블라블라~ 올라가라고 마구 등떠밀었지뭐야 블라블라블라~



오후엔 날이 개면서 해가 반짝했다. 내가 오늘 맡은 곳은 '의자 리폼'이었기 때문에 참가자 중 한명은 꼭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했다. 돌아가면서 쉬긴 했지만 멍하니 앉아 있자니 지루하고, 마켓도 큰 규모가 아니라 구경할 것도 그리 많진 않았다. 그래도 다행히 3시 반쯤 마켓이 문을 닫았기에 쾌재를 부르며 짐을 챙겼다. 케익을 먹으며 설렁설렁.. 난 아무래도 불타는 의욕으로 열심히 일하는 스타일은 아닌가 보다. 이런 베짱이 같으니라고.. (나중에 상인은 하지 말아야지. 나랑 안맞는다. 허허)



노탬튼 시내


피곤 피곤 피곤. 칼튼에 돌아와 저녁을 먹곤 바로 샤워를 했다.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아 날이 더웠다. 뜨거운 물밖에 나오지 않는터라 샤워실 안이 무척 더웠다. 올라가지 않는 옷을 낑낑대며 갈아입곤 재빨리 밖으로 나왔지만 덥다. 덥다. 덥다!! 산책을 간다는 사람들을 뒤로 하곤 그늘에 침낭깔고 누워 더위를 식히니 '에혀 좋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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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4일, 토요일
오늘도 마켓이 열렸다. 다른 곳을 가보고 싶어서 코벤트리 마켓팀에 합류했는데 이건 뭐.. 더 지루했다! 으악. 코벤트리 마켓은 우리나라 시장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함께한 일행은 타라, 아벨리나, 자브, 데니스. 마켓을 가자마자 아벨리나와 나는 1시 반까지 휴식시간을 가졌다. 코벤트리 커뮤니티 분과 타라를 따라 주변을 소개받고 근처에 있는 Coventry Catherdral로 자리를 옮겼다.



Coventry Catherdral. 인포 센터에서 시내 지도를 한장 얻었다.



양옆의 천장 높이만큼 쌓인 오르간 파이프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 옆의 4층 높이의 그림도. 어떤 여자분이 앞으로 나오더니 짧은 안내를 해주셨는데, 이내 오르간 연주와 함께 그 특유의 소리가 성당안을 가득채웠다.



오른쪽 어두컴컴한 건물이 코벤트리에서(?) 오래된 이라한다. 문이 닫혀있어서 들어가보진 못했지만 꽤 오래전에 지어진 술집이었다. 안내판도 있었는데 1950년대에 지어졌다고 했나... 설마 1500년대? 아, 이런 몹쓸 기억력.


아벨리나와 나, 둘은 따로 나와 다른 몇몇 성당에도 들어가보고, 분수대 앞에 앉아 샌드위치도 먹고, 시내도 한바퀴 돌면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다. 아벨리나는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는 편이라 인상만큼이나 참 편안했다. 여행 , 폴란드와 한국, 스타벅스, 대학시절 등등에 대한 대화를 나눴는데 놀랍게도, 그리고 부럽게도! 폴란드는 대학 학비가 무료란다! 그래서 사람들이 대부분 전공을 여러개 갖는단다. 아벨리나만해도 경제학, 역사, 영문학, 교육학 등 4개를 공부했는데 지금은 다시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다. 예전에 교사로 일했던 적이 있다기에 교사가 되기 어렵지 않냐고 했더니 시험은 그다지 어렵지 않지만, 애들이 워낙 드세서 교사생활이 끔찍했단다. 그래서 결국엔 사표를.. TV에서 중국 어린이들이 똑바른 자세로 선생님 말씀을 듣는 걸 보면서 '정말 사랑스러웠다니까!'라고 눈을 반짝이던 그녀.

깜찍한 택시. 문까지 열고 신기한듯 구경했는데 뒷자석은 기차처럼 4사람이 마주보고 앉을 수 있게 되어있었다. 분홍, 회색, 검정 등등. 그 중에서 분홍 택시가 가장 귀여웠다.


마켓 돌아오는 길. 근처까지 왔는데 을 잃었다. 가끔은 길 한번 잃어주는 것도 재미있다. 그러다 뜻밖의 장소를 찾아낼 수도 있고 말이지. 지도를 보고 어찌어찌하여 마켓에 도착. 쉬는시간 쫑과 함께 끔찍한 시간이 우릴 반겨줬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마우스에 대해 소개하고 진열해놓은 가구를 파는 일이었다. 정.말. 싫었다. 하하하하하하하. 시계를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1분이 1시간 같았다. 가게 문을 닫는데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니까!



먹지 말자, 먹지 말자 했지만 초콜릿으로 뒤덮힌 군것질을 보니 이성을 잃었다.


오늘은 워크캠프의 마지막 날. 너무 아쉽고 아쉽고 아쉬웠다. 1주일은 너무 짧았다. 라르쉬로 돌아가 일을 하려니 죽을 맛이었다. 데이브가 나누어주는 워크캠프 확인서와 기념 뱃지, 설문지를 받곤, 저녁 후에 남자들끼리 모여 축구시합을 했다. 팀을 나눈다고 파랑, 노랑 치마를 하나씩 걸쳐 입었는데 어찌나 웃기던지. 큭큭큭. 호르헤는 정말 치마를 입은 것 같아서 더 웃겼다.


 
전/후반전 총 30분. 헥헥거리며 하나둘 자리로 돌아와 과자를 하나둘씩 집어들었다. 해가 질 무렵 단체사진을 한장 찍었는데 다들 뭐가 그리 분주한지 움직이느라 사진이 정신없다. 얼굴없는 사람 몇명인지 세볼까?



Posted by Bori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