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의 아일랜드 라르쉬. 동료들은 주로 유럽, 북미에서 왔거나 아이리쉬였는데 함께 사는내내 한국인 혹은 동양인에게서 받을 수 있는 친근함은 느끼기 어려웠다. 거기에 더해진 그들의 개인주의는 정말 오만 정 다 떨어지는 굉장한 문화적 충격이었다. 내 첫 영어권 생활이었고 사교적인 성격도 아닌 애가 영어까지 못해서 생긴 일이라 생각했다.



코크시내를 걸을 때였다. 주말이라 길거리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안경을 벗고 걷고 있다 다시 안경을 썼더니 머리가 핑 돌았다. 그러다 갑자기 설명할 수 없는 굉장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수많은 백인들 사이에 서 있는 내가 너무 낯설었고 철저한 이방인이 된 것 같았다. 도저히 그곳에 있을 수 없어 사람이 별로 없는 곳으로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얼마전까지만해도(어쩌면 지금도) 난 어떻게하면 평생 외국으로 돌아다닐 수 있을까 고민했었다. 한국은 살기 편할지 몰라도 좋은 곳은 아니니까, 특별히 잃을 것도 없으니까 이민도 생각해봤다. 그러다 곰곰히 생각했다. 난 일터든 여행이든 뭐든간에 가장 중요한 건 좋은 사람들과 있는것이라 생각한다. 사람들 잘 만나고 다니진 않지만 아이러닉하게도 난 사람이 제 1순위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그리웠던것도 같이 웃고 편하게 떠들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내겐 그 점이 타지생활을 주저하게 만드는 큰 벽이다.



백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벽은 생각보다 높다. 적어도 내겐. 미국인이 영국에 가면 어떤 느낌이 들까? 서울사람이 제주도 간 느낌일까? 전 세계 어딜가도 내 모국어를 쓰는게 전혀 이상하지 않을 때 기분은 어떨까. 영어나 지위에 상관없이 동양인이란 이유로 무시의 눈빛과 말을 듣는건 대체 왜일까. 아시아에선 편했던게 서양에선 왜 불편하고 뱅뱅 겉도는 느낌이 들까. 이런 기분은 나만 느끼는 걸까.




영어를 잘하면, 다른 문화권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면 그 이질감이 없어질까? 준 원어민 수준이래도 살다보면 그들이 쓰는 슬랭과 비속어 온갖 것에 매일같이 언어장벽을 느끼게된다. 그렇담 영어 좀 한다고 하면 그들 사회에 어우러질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건 언어장벽만큼이나 어렵다. 함께 있다가도 정신차려보면 인종별로 끼리끼리 모여있는 씁쓸한 장면과 마주할 뿐이다.



여기서 생기는 또하나의 의문점. 평생을 좌절하고 공부하고 그럼에도 절대 넘을 수 없는 영어란 놈에 내 인생을 필요이상으로 할애하는게 어떤 가치가 있을까? 말이 통하려면 알아듣고 말할 수 있어야 하니까? '그냥 이 동전 한닢이 가지고 싶었습니다..' 이럴 수도 있겠지내 생각에 답은 하나다. 처음부터 그 벽을 인정하고 할 수 있는데까지, 내가 즐기면서 할수 있는 선에서 만족하는 것. 인종차별, 언어차별, 그들의 세계, 우리세계. 욕심 버리고 적당히 거리두고 적당히 알아듣고 적당히 지내면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럼 난 그렇게 살아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인가? 



평생 넘을 수 없는 언어의 벽, 그로 인한 스트레스, 쉽게 융화되지 못하는 인간관계.. 하지만 한국보다 덜 빡빡하고 마음이 여유로울 수 있는 환경. 미디어에 끌려다니며 누구는 어쨌네, 어떤 연예인이 어쨌네 남 얘기 하루종일 하는대신 내 인생에 더 신경쓸 수 있는 곳. 난 무엇때문에 자꾸 떠나려고 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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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ri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