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쯤 되서야 모두들 하나둘 일어나 식탁 앞에 앉아 시리얼을 먹었다. 날씨가 참 좋다. 오랜만의 파란 하늘이다. 내 방이 1층에 있어 커튼을 닫아두어야 하는 게 참 아쉬웠다. 오늘은 부활절 기간이라 워크샵이 문을 닫은 까닭에 모두가 할일이 없었다. 그리하여 아침 11시 반쯤 도니를 남겨둔 채 모두 산책을 나갔다. 장소는 워크샵 근처에 있는 어느 호숫가. 버스 창문 밖으로 여러번 내다보던 곳이다. 둥그런 호수 주위로 잔디밭과 벤치가 있고 호수 안엔 백조와 오리, 비둘기들이 한가롭게 노닐고, 많은 사람들이 조깅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곳이다. 언제 한번 나와서 사진을 찍어야지 했는데 오늘이 그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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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날씨 운도 많이 따랐다. 햇볕이 참 따사로웠다. 그 빛을 흠뻑 쬐면서 호숫가를 한바퀴 돌았다. 우아하게 물 위를 떠다니는 백조의 현란한 발길질과 이름모를 오리들을 구경했다. 초록과 파랑이 기분 좋아 연신 셔터를 눌렀는데, 너무 밝게 나온 사진이 몇장 있어 안타깝다. 







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을까 하다가 테스코에 가서 차와 쿠키를 먹기로 했다. 이 곳에는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하나의 법칙이 있다. 레지던트가 봉사자에게 쇼핑, 산책 등을 포함한 어떤 행동을 함께 하자고 부탁했을 경우, 음식을 먹게 되면 그 음식값은 온전히 레지던트가 부담한다. (1명의 레지던트와 1명의 봉사자가 동행을 하는 경우 봉사자는 교통수단을 무료로 이용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알무트의 밀크 쉐이크는 나일이, 리나의 커피와 스콘은 헬렌이 그리고 내 아이스크림과 초콜릿 바는 하우스 생활비로 충당했다. 물 없이 그 두개를 먹으려니 어찌나 목이 막혀오던지! 다음번엔 꼭 음료를 같이 시켜야겠다. 









아침에 늦게 일어난 탓인지 어제부터 있던 두통이 오늘까지 이어졌다. 열도 약간 있어서 오후부턴 컨디션이 별로였다. (지금은 좀 괜찮아진 듯) 하지만 오늘 저녁에 도커스(L'Arche Cork의 다른 집)로부터 저녁초대를 받았기에 5시 15분쯤 집을 나섰다. 터벅터벅 걸어서 도커스에 도착했더니 마리 줄리(프랑스 파리 출신)와 리타, 안젤라가 있었다. 서로의 나라, 음식, 언어 등의 불편함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난 6시 반쯤 저녁준비를 거들었다. 오늘의 메뉴는 소시지, 샐러드, 프랑스 케익이었다. 식빵처럼 생긴 촉촉한 빵 안에 자그만 닭고기가 들어있는 빵이었는데, 이걸로 배가 채워질까 궁금했지만 생각보다 맛은 괜찮았다. 






도커스는 참으로 조용했다. 하우스 리더가 2주째 휴가를 갔다는데 2명의 레지던츠를 혼자 감당하고 있는 그녀가 조금은 안쓰러웠다. 개인적으로 한가지 안타깝고 약간은 기분이 좋았던 건, 그녀가 한국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것이었다. 아시아에 원조가 필요한 나라가 많아서 그런건지, TV에 나오는 아시아의 모습이 많이 못살아 보였는지 '한국에도 이거 있어?' 라고 묻는 그녀의 질문은 그리 유쾌한 것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뭐, 그냥 넘기기로 했다. 악의는 없어 보였으니.. 조금만 더 공손한 영어를 사용했으면 하는 바람은 있지만.. 하하.

 
Posted by Bori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