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행을 간다는데 기쁘지 않은건 또 뭐람. 어찌됐든 영국으로 보낸 편지가 잘 도착했다는 소식과 함께 6월 28일 Bedford 코치 역에서 5시 20분에 픽업을 하겠다는 메일이 날아왔다. 내가 가게 될 단체는 Emmaus라는 곳으로 노숙자를 위한 비영리 단체이다. 가구 등을 수선해서 되파는 일을 하는데 1주일동안 지내면서 직접 수선도 하고 강좌에도 참여하게 될 것 같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 다른 지역에서도 워크캠프가 열리고 영국에서는 이번이 첫회라고 한다. 비자가 어쩌구 저쩌구 애도 먹었지.

그리하여 현재 28일 오전 8시 10분에 출발하는 항공편의 온라인 체크인을 마쳐놓고, 워크캠프 외에 주어진 이틀을 어느 곳에서 보낼까 궁리 중이다. 28일 아침에 스텐스티드 공항에 도착하는 관계로 근처에 있는 캠브리지를 반나절 돌아보고, 7월 5-6일은 런던에서 지낼까한다. 런던 어디를 가야하나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어제부터 주말휴가를 보내고 있는 닉과 오늘부터 이틀동안 휴일인 브리짓이 현재 런던에 있긴한데 나중에 물어볼까 말까. 모르겠다.




2.

6시 45분. 두통 때문에 잠에서 깼다. 여기와서 참 좋아진 것 중 하나가 바로 '아침에 뜨거운 물로 샤워하기'!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다. 한 20분은 하는 듯. 크하하. 희안한게, 여기는 수돗물을 사용할 때 돈을 안낸다. 뜨거운 물을 사용할 때만 수도세를 낸다고 한다. 왜지?

워크샵- 9시 반에 캐티와 미팅이 있었다. 시험기간인 3달을 채웠기에 같이 사는 봉사자들과 레지던츠로부터 평가를 받고, 자가평가도 하는 자리였다. 사전에 질문지를 작성했던터라 다른 봉사자들과 내가 쓴 글을 읽어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해줬다. 뭘 하는 자리일지 몰라서 두려웠던 것도 사실이지만 평소하는 미팅과 별다른 차이는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얘기만 추가됐을 뿐이었다. 다행히 나쁜 얘기는 없었지만 좋은 얘기라고 해서 100% 믿을 수는 없었다. 평소 내가 느끼는 것과 그들이 설문지에 쓴게 항상 일치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어쨌든 내가 1년을 모두 채우길 바란다기에 한번 노력해보겠다고 했다. 금요일 아침이라 음악세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가 참 좋았다. 1시간쯤 회의를 끝내니 강당에 테이블이 가득, 접시와 찻잔이 한가득이다. 조금 있으니 외부에서 초청 연주단이 와서 기타연주를 뽐냈다. 커뮤니티 리더인 데클란과 브랜든, 조가 함께 했다. 주방에서 을 구워오길래 크림과 잼을 발라 우유와 함께 먹었더니 그 맛이 환상! 2개나 먹었다. 냠냠냠냠. 배고팠다구!


3.

누구에게나 고민이 있다는 걸 아는 건 좋은 일이다. 지난 수요일 수나스의 피터가 공구를 빌리러 왔다가 데티와 함께 잠깐 얘기를 나눴다. 평가 설문지의 마지막 질문이었던 '이 곳에서 얼마동안 머물 계획입니까?'에 답하지 못하겠다는 말을 시작으로 저마다의 불만,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피터와는 그동안 어색하게 인사만 하는 정도였는데 짧게나마 대화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제 막 2년 차에 돌입한 데티, 수년간 있었던 것 같지만 이제 10개월째인 피터, 아직도 어리벙벙한 3개월차 나. 그들이 말하길- 1년이면 충분한 것 같아. 2년이 내가 있을 수 있는 최대기간이야. 거의 24시간을 집, 레지던츠와 함께인 생활, 일하는게 일하는 것 같지 않은 하루하루. 다른 사람들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데티는 1달 정도 인도 커뮤니티에서 지낼 계획도 갖고 있다. 인도에 대한 무한 동경이다. 흐흐. 라르쉬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면 짧게 머무를 수 없지만 경험이 있다면 혹은 누군가의 친구, 형제라면 1, 2달 정도 봉사하는게 가능하다고 한다. 현재 워크샵에 마리줄리의 남동생이 1달 예정으로 머물고 있는 것 처럼. 또한 여행 시 전 세계에 있는 라르쉬 커뮤니티에서 며칠 정도 방을 이용하면서 숙박을 해결할 수도 있다. 우후후.

이 곳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무조건 열심히 돈벌기'와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라 그런쪽으로 의견이 충돌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돈보다는 사람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들이기에. 하지만 하고 싶은걸 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단거.. 그래도 언제 올지 모르는 먼 미래를 위해 오늘을 불행하게 살지 말라는 의견엔 모두 동의. 





4.

아니타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브랜든, 수즌, 폴린, 이슈트반과 함께 윌튼 쇼핑센터로 차를 마시러 갔다. 이슈트반이 저번에 말해줬던 아시안 마켓에도 들렀다. 중국 음식이 대부분이었지만 라면, 과자, 고추장, 된장, 만두 등 한국 음식도 몇몇 찾을 수 있었다. 아이고 반가워라! 500g짜리 고추장도 하나 구입했는데 '러블리~ 러블리~!!'란 소리가 절로 나왔다. 3달만에 드디어 비빔밥을 먹어볼 수 있겠구나야~

아니타가 한번 맛 보더니 '으악~~' 목이 타들어가나보다. 크크크. 닭고기 요리에 좋겠다면서 좋아하긴 했지만.
+ 수즌 왈 '그게 뭐야?' 'Hot pepper paste.' '오마이 갓, 오마이 갓'
 

5. 

어제 저녁 수즌과 함께 버섯덮밥과 감자조림을 만들었다. 간장 맛이 달라서인지 비율을 못 맞춰서인지 맛이 영 아리까리했다. 마늘과 파를 볶을 때까지만해도 좋았다. 하지만 물을 넣은 다음부턴 2시간 내내 이것저것 마구 넣어서 간을 봐야했다. 끌끌끌끌끌. 전분가루가 없길래 옥수수가루를 풀어서 넣었는데 얼만큼 필요한지 몰라서 걸쭉해질때까지 10번은 넘게 넣은 듯. 하앗ㆀ

주말에 2번 밥 해본게 전부인데다 주말엔 대부분 집에 가기 때문에 사람이 반으로 줄어 부담이 별로 없다. 하지만 이번엔 목요일이다. 목요일엔 저녁 손님까지 오는 날인데.. 점점 이상해지는 소스를 보면서 식은땀이 절로 났다. 이걸 버리고 다른걸 만들어야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간장 국물 속에 빠진 버섯, 양파를 보던 수즌이 하는 말 '오늘 저녁 진짜 이상해. 나 이거 못 먹어. 못 먹어!' 

일단 수즌이 썰어놓은 감자를 요리하기 시작했다. 간장과 사과주스를 섞은 소스에 넣고 조렸는데 처음에 간장을 너무 많이 넣어서 몇번을 버렸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결과가 좋게 나와 다행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감자를 찌거나, 으깨거나, 오븐에 구운게 전부라 감자조림은 처음 먹어본단다. 요리법이 색다르게 느껴지나보다. 맛은 있다더군. 휴우-


다른 사람들은 신나게 요리하던데 나는 그 부담감이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요리는 꼭 해야하는 일이니 차츰 늘겠지. 다음엔 한번 파인애플 볶음밥을 시도해볼 생각이다. 키키. 참, 저녁 못 먹겠다는 수즌은 2접시를 해치웠다. 하하. 그리고 난 요리가 끝난 후 두통을 얻었다. 10년은 늙은 느낌과 함께..



6.

현재 우리집에 있는 봉사자는 총 7명. 7, 8월에 2명이 떠나긴 하지만 나와 데티, 닉을 제외한 4명이 운전을 하고, 닉은 독일 운전면허가 있어서 곧 운전을 시작할 참이다. 데티도 헝가리에서 면허 준비를 조금 했던터라 얼마전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그렇게 되면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운전을 하게된다. 아일랜드에 와서 운전에 조금 관심이 생기긴 했다. 적어도 한국처럼 혼잡하거나 정신빼놓지는 않으니까. 신호등도 간단하고 빵빵거리는 사람도 거의 없다. 여기와서 경적소리 딱 3-4번 들은 것 같다. 

이래저래 나중을 위해서라도 운전은 배워두는게 좋을 것 같아 -아직 계획엔 없지만- 책을 펼쳐들었다. 데티가 보고 있는 책인데 일단 호기심에 한번 읽어보는 중이다. 250쪽 중에 60쪽 읽었나.. 책을 보고 있으니 '운전면허를 확 따버려?'란 생각이 들더군. 하지만 한국보다 따기 힘들고 까다롭다고 들었다. 임시면허 같은걸 먼저 받고 2년 안에 Full Licence를 따야한다나.. 임시면허로 운전하는 동안엔 꼭 조수석에 운전면허를 가진 사람이 동행해야 한다고 들었다. 운전 배우는 것도 비싸고.. 흠. 그냥 한국에서 따놓는건데! 크으~



 

Posted by Bori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