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러분들의 휴가가 아니라 레지던츠의 휴가입니다!' 
내일 아침 8시 반. 토요일에 휴가가 시작되는 모든 레지던츠와 어시스턴츠가 안크리에 모인다. 떠나는 곳은 아일랜드의 캐빈, 웨스트포트, 도네갈, 영국의 스코틀랜드와 런던, 코크의 안젤락. 1시간 후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뿔뿔히 흩어질 예정. 영국팀은 일요일에나 떠나기 때문에 마음껏 늦잠을 즐길 수 있다! 일요일 아침까지 스코틀랜드팀은 안젤락에, 런던팀은 안크리에서 지낼 예정.

영국의 몇몇 라르쉬 커뮤니티가 코크로 휴가를 오기 때문에 손님에게 을 내주기 위해 모두들 방을 정리하느라 바빴다. 그리하여 내 방문 앞에도 'Welcome to Assistant'라는 종이한장이 걸렸다. 원래는 런던 Lamberth 라르쉬에서 9명이 오기로 되어 있었지만, 램버스에 돼지독감(Swine flu)이 발생했다는 소식에 일정이 취소됐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아무 곳으로도 떠날 수 없단다. 하필이면 휴가 때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 운도 지지리 없군! 램버스로 가기로 한 코크의 몇몇 사람들도 대신 다른 곳에서 지내게 될 계획이다.

램버스에서 오지 않는다기에 '방 청소 안해도 되겠구나야~'하고 맘껏 어질러 놓았더니 다른 팀이 온단다. 흡! 급히 청소해 놓느라 진땀 한방울. 대충 짐도 챙겨놓긴 했는데 아직 싸놓진 않았다. 내일 아침에 해도 괜찮겠지 뭐.
-_- 아, 귀찮아.


2.
오늘부터 Holiday라 워크샵이 1시에 문을 닫았다. 즉, 1시부터 시작되는 쉬는 시간이 없어진단 얘기! 그래서 아침에 Time off를 갖기로 했는데, 난 아침에 캐티와 미팅이 있단 말이다! 하아. 결국엔 닉 혼자 집에 남고 레지던츠와 함께 워크샵으로 향했다. 오늘의 운전사 리즈. 아침부터 비가 세찼다. 

오늘 미팅은 간단했다. 캠프힐과의 진행 상황을 얘기하고, 안크리에선 어떤지, 언제 다시 미팅을 가질지에 대해 얘기했다. '9월에 떠나기로 한거 잘 한거 같아?' 나도 잘 모르겠다. 떠나려고 하니까 또 섭섭해지는 건 뭐지? 떠나려고 하니까 왠지 안정되어가는 느낌은? 내가 떠나려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인지, 아님 이제서야 슬슬 적응해가는 건지 분간하기가 힘들다. 봉사자가 물갈이되는 9월에 와서 같이 시작을 했더라면 더 적응하기 쉬웠을까. 그런 생각도 해봤다. 어쨌든, 떠나는 건 이미 정해졌다.


하우스 코디네이터로 있는 노라가 오늘을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물러난다. 1년간 휴가를 내어 UCC에서 공부를 했던 루벤이 과정을 마치고 돌아올 계획이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노라의 노력에 박수를 쳐주고자 10시 반부터 그녀를 위한 시간이 마련되었다. ㄷ자 모양으로 놓여진 탁자에 다같이 둘러앉아 우스꽝스런 연극을 구경하고, 따듯한 차와 함께 쿠키와 케익을 들었다. 노래의 한 구절이 적힌 종이를 건네받아 다 같이 따라 불렀다. 노래가 제법 좋았는데 가사가 잘 기억나질 않는다. 구글에도 없고..

이제 끝났나 했더니 DVD를 꺼내들면서 하는 말, '영화 맘마미아가 곧 시작됩니다!!' 비가 여전하기에 걸어가기도 그렇고 해서 리즈를 찾았는데 안에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1시쯤 레지던츠와 함께 돌아가는게 좋을 것 같다. 워낙에 신나는 노래들이라 영화 보는 도중에 레지던츠들이 나와서 추고, 웃고, 박수치고, 환호성 치느라 시끌벅적했다. 쉬는 시간은 못 가졌지만 덕분에 즐거웠지 뭐!



3.
내일 알무트가 독일로 돌아간다. 나와 함께 웨스트포트에 가는 마리줄리와 피터는 휴가가 나고 각각 프랑스, 체코로 돌아간다. 여름 동안만 머물기로 했던 조엘렌도 8월에 미국으로 들어간다. 아니타는 다음 달 스위스에 있는 라르쉬로 떠날 예정이다. 그녀가 가는 스위스 커뮤니티는 학생신분의 자원봉사자만 집에서 살면서 봉사를 하고, 그 외의 사람들은 직업처럼 하루 8시간 정도 일하며 을 받는다고 한다. 그건 라르쉬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는데 잘 모르겠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어쨌든, 독일어를 쓰는 스위스 커뮤니티로 간다니 잘된 일이다. 예전에 아니타와 대화를 나눴을 때 그녀가 '더이상 이 곳에 있는게 행복하지 않아. 독일로 돌아가는게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어. 가서 뭘 해야할진 모르겠지만 이미 취직할 곳도 알아보고 있거든.'이라고 했기에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땐 혼란스러웠다. 아마 라르쉬 코크에서 행복하지 않다는 말이었겠지.


8, 9월에만 나를 포함 총 8명의 봉사자가 떠난다. 그리고 그만큼의 새로운 봉사자가 올 예정이다. 이번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미국인이다. 안크리로 오는 사람들은 8월 25일에 인도네시아인, 28일에 미국인, 9월에 우크라이나인 이렇게 3명이다. '미국인이라면 지긋지긋했는데.'라면서 관심을 보이던 데티. 여자 어시스턴츠 6명과 함께 생활하게될 유일한 남자 닉. 노라가 말하길 '안크리 이름을 바꿔야 겠어. 안크리가 아니라 닉의 파라다이스-!' 하지만 닉은 반응은... 자신의 목을 조르며 이 막힌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안크리에 여자 어시스턴츠가 6명이나 필요해요?' 뭐, 사실 내가 봐도 그다지.. 필요해 보이진 않는다.


4.
8월 15일 '일 해야 하는' 휴가에서 돌아와 17일부터 20일까지 주말휴일을 갖는다. 18일 낮엔 카일 캠프힐, 19일엔 캐릭온슈어를 방문하기로 했다. 차 시간이 안 맞는 것 같다고 하니 카일 담당자분께서 친절하게도 '18일에 와서 하루 묵고 가셔도 돼요.' 하셨다. 감사합니다- 하고 넙죽 받아들였다. 하하.

캐릭온슈어 담당자와 통화를 했을 땐 카일에서 답장을 받기 전인지라 2곳에 관심을 갖고 있단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메일을 보내 입장을 알렸는데 두 곳의 반응이 조금은 달랐다. 8월 중순이나 되야 방문을 하기 때문에 그때까지 자리가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건 같았지만.. 허허. 라르쉬에서의 경험을 알기에 방문을 해보고 신중히 결정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카일 담당자의 메일. 왠지 더 나를 이해해준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내게 더 큰 영향을 주는 건 레지던츠와 어시스턴츠라는 것. 사람들이 어떤지 직접 보고 싶다.


+ 오늘 킬케니 라르쉬에 있는 한국분의 전화를 받았다. 킬케니에 캠프힐도 많이 모여있는지라 다들 친하게 지낸단다. 오호. 8월 말에 한국에 돌아가신다기에 캠프힐 가기 전에 만나뵙기로 했으니, 이로써 '계획'이 세워진 첫 주말휴일을 갖게 되는 것인가? 알차도다!




5.
그러고보니 레지던츠들이 무슨 장애가 있는지 모른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물어보기까진 말해주는 사람도 없고. '다음에 물어봐야지.' 해놓고 계속 까먹은거다. 저 사람은 왜 저런 반응을 보일까, 이게 그 사람에겐 어떤 의미를 가질까.. 요즘따라 궁금하다.

그저께 수즌의 상태가 정말 안 좋았다. 기분이 최고와 최저를 가로지르는 수즌. 요즘 지나치게 들떠있더니 며칠 전엔 구토를 하고 아니타, 리즈와 함께 앓아 누웠다. 털어냈다 싶더니 그저께부턴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를 내고, 문을 꽝 닫고, 집이 떠나가라 울고, 말 붙이기도 무섭게 무표정으로 앉아있기를 반복했다. 내가 본 것 중의 최악이었다.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불편함 그 자체였다. 대부분의 레지던츠가 그렇지만 발음이 부정확해 알아듣기도 힘들었다. 뭉게지는 발음으로 말은 어찌나 빨리 하던지..

안크리의 레진던츠가 어떤 행동 패턴을 갖고 있으며 그때의 상황별 대처법에 대해 배운 게 없는지라 어떤 반응을 보여야할지 몰랐다.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건 리즈나 아니타를 부르는 것. 기분이 안좋았다. 속해있지 못하고 도는 느낌이었다. 그들에 대해 자세히 아는게 없으니 원. 오리엔테이션 때 각 장애에 대한 설명과 살게될 집의 레지던츠에 관한 트레이닝이 있었으면 좋겠다. 쓸데없이 워크샵에서 할일 없이 앉아있는 것보다.


어제 리즈와 한바탕 한 후로 다시 기분이 '최고조'로 돌아왔다. 지난 밤 방문이 안 닫힌다며 울기를 반복하며 거실에서 자더니 새벽엔 2층에 올라와 리즈를 부르고 부르고 또 불렀다. 덕분에 나까지 잠을 설쳤다. 신체적인 장애보다 정신적인 장애를 대하는게 얼마나 고통스러울 수 있는지 하루사이에 조금이나마 경험할 수 있었다. 일전에 더블린 라르쉬에 원정을 나갔다 온 브리짓도 이런 말을 했었다. '매일 아침 6시 반에 일어나는게 힘들긴 했지만 거긴 신체적인 장애 위주였거든. 그래서 코크에 돌아왔을 때 얼마나 숨이 막혔는지.. 차라리 몸이 고단한게 나아'  

오늘 맘마미아를 보면서 신나게 웃고 춤추고, 집에 돌아와 노라와 얘기를 하며 지나칠 정도로 크게 깔깔깔 웃는 그녀의 모습이 참 아리송했다. 캐티가 그러길 변화에 민감한 그들이기에 휴가를 앞두고 그런 반응을 보인거라는데, 사실 이것도 내 입장에선 아직 크게 이해가 되진 않는다. 그들이 혼란스러워 한다는 이유로 램버스팀의 일정이 취소된 것도 비밀리에 부쳐졌는데 이건 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이런게 큰 문제로 받아들여지는거지?



6.
휴가동안 Mayo에서 생활하게 될 집이 꽤 좋아보이긴 했지만 인터넷은 불가능할 것 같다. 휴일 때 인터넷 카페를 가면 된다지만 그럴 것 같지도 않고.. 일기쓰고 싶어서 손이 근질근질거릴 게 뻔한데.. 휴우. 2주 동안 소식없어도 걱정하지 말아요, 엄마!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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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ri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