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동안 묵었던 곳, 겉보기에만 좋았다. / 1주 동안 썼던 2층 침실, 매일 플룻을 연습하던 마리줄리. 여기까지 플룻을 들고 오다니.. 사실 체중계까지 들고 온 그녀였다.



8월 1일, 토요일
아침 9시 반, 안크리에 레지던츠, 어시스턴츠가 모두 모여 사진을 찍곤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길을 나섰다. 저 남쪽 코크에서 저 북쪽 루이스버그까지 가는 6시간은 정말이지 끔찍했다. 풍경조차 지루하지 짝이 없었다. 골웨이 가기 전 차를 마신 후 -여기서 도네갈 팀을 만났다- 골웨이 어느 식당에서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먹었다. 웨스트포트에 있는 테스코에서 장을 본 후 저녁이 다 되서야 목적지에 도착. 정확히 웨스트포트가 아니라 20Km 떨어진 루이스버그에 짐을 풀었다. 방이 5개인고로 난 마리줄리와 1주 동안 같은 방을 썼다. 그리고? 그 1주일 내내 불편함에 잠을 설쳤다. 매일 밤 꿈을 몇개나 꾸고 몇 번이고 잠에서 깨야했다.



집 앞 풍경


깨끗한 맑은 하늘은 단 한번도 볼 수 없었다. 거의 2주 내내 비가 오고 바람이 세찼다. 안개와 구름에 가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던 날이 절반 이상이었다. 복도 없지, 내 Day off때마단 비가 왔다악!


집으로 들어오는 입구에서..


사실, 풍경이 그리 기가 막힌 동네는 아니었다. 웨스트포트도 루이스버그도. 루이스버그는 굉장히 작은 마을이었는데 심지어 서점조차 없었다. 아, 기념품 가게는 있더군..




저 멀리선 비가 내리고 있는 중. 아일랜드를 여행하기엔 5, 6월이 최고인 것 같다. 심지어 조금 덥기까지 하니.. 하지만 7월이 들어서면서는 비 오는 날이 많아진다. 위쪽 지방이 더 날씨가 안 좋은 듯.. 그리고 쌀쌀하다. 7, 8월에 아일랜드 북쪽지역으로 여름 휴가를 간다면, 그건 여름이 아니라 100% 겨울 휴가가 될거다!



8월 2일, 일요일
아침 10시 반, 루이스버그 입구에 있던 성당으로 예배를 갔다. 여기까지 와서 성당이야? 하지만 예배 후 먹었던 초코쿠키는 정말 반가웠다. 관광객을 제외하면 참 조용한 동네였는데 성당엘 가니 사람들로 미어터졌다.



오후엔 근처 바닷가로 산책을 갔다. 근처에서 캠핑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저 멀리 부둣가에선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천막을 치고, 음식을 먹고, 사회를 보던 누군가의 호령에 맞춰 3명씩 바닷물로 뛰어내리고 있었다. 아이리쉬에게 비는 전혀 문제될게 없었다.




집에 돌아오기 전 펍에 들렀다. 매주 일요일마다 하는 경기를 보기 위해 찾은 손님들이 많았다. 저녁 식사 후엔 다 같이 거실에 모여 2주 간의 계획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이틀에 한번 꼴로 조금 멀리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 우리가 찾을 곳은 대략 Castlebar, Knock, Clifden, Achill Island, Sligo.




박물관을 찾다


3일, 월요일

월요일엔 마리줄리와 마이크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끼리 웨스트포트에서 영화를 봤다. The proposal. 웃고 즐기기에 딱이었다. 우리가 영화를 보는 사이 마리줄리는 집에서 저녁을 준비했다. 사실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2주 내내 거의 대부분 마리줄리가 저녁을 했다. 그녀가 Off일때마다 내가 저녁을 했다. -고추장 닭볶음 인기 짱이었음. 크크- 요리를 좋아하는 그녀인지라 괜찮다고 했지만 휴가가 끝날 때 즈음엔 지겨워하긴 했다. 하하. 며칠에 한번씩 스콘이나 케익도 만들어줬는데 치즈케익이 단연 압권이었다.

그동안 모임이 있을 때마다 종종 케익을 만들어왔던 마리줄리. 그녀의 베이킹 솜씨는 참 유명했다. 잘 웃지 않는걸로도 유명했지. 하고 싶은 말을 직접적으로 하는 약간은 차가운 성격인지라 별로 좋아하진 않았다. 봉사자들 사이에서 얘기가 오가기도 했고. 하지만 휴가를 보내면서 점점 많이 웃기 시작하고 처음보단 날 대하는 태도가 좋아진 걸 느낄 수 있었다. 불편한건 여전했지만 친해지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맨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이 기념품 가게와 카페. 차도 마시고 샵에 들러 기념품 구경도 했다.


4일, 화요일
마리줄리, 메리, 마틴과 함께 웨스트포트의 동쪽에 위치한 캐슬바에 갔다. Country Life 박물관이었는데 정~말 지루했다. 다행히 컴퓨터 실이 있어서 블로그에 들어와 봤는데 답글이 달리지 않는 까닭에 짜증만 왕창 받고 돌아왔다.

마이크가 감기에 걸렸다며 아침에 병원에 다녀온 후로 집안에 머무는 까닭에 피터가 집에 남았다. 내가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한 게 이 때부터였다. 난 드라이버가 아닌 까닭에 운전자가 1명일 경우 다른 사람들이 나들이를 가는 동안 무조건 내가 집에 남아야 했다. 덕분에 난 수요일부터 3일 동안 집에 쳐박혀 있는 행운(!)을 얻었다. 아침, 저녁마다 TV앞에 멍 때리고 앉아 있는 것도 지겨운데.. 미쳐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이미 화요일부터 휴가를 끝내고 싶었던지라 스트레스가 더 컸다. '마이크가 왜 하필이면 나랑 같은 팀인건데!!' 이런 생각, 안들면 정상이 아니었다. 사실 감기는 금방 없어졌다. 콧물 뿐이었다. 숨 쉬기 불편해했지만 그건 오래전부터 있던지라 침대에 누워있을 정도로 아픈 건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5일 내내 방과 화장실만을 오갔던 마이크. 모든 차와 식사를 침대까지 일일이 갖다줘야 했다.

그리고 내가 몸져 누웠다. 수요일 밤부터 기침이 나고 몸이 쑤시더니 이틑날 기여코 기에 걸렸다. 열이 나고, 몸 여기저기가 쑤시고 두통에 콧물, 기침이 나기 시작했다. 피터는 쉬는 날, 마리줄리는 레지던츠와 Knock엘 갔다. 가보고 싶던 곳이었는데.. 난 아픈 몸을 이끌고 마이크의 점심을 해다 바치고, 차를 끓여다줘야 했다. 화딱지가 최고조에 달했다. 그냥 한국으로 사라져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예전에 휴가 갔다가 사라진 봉사자가 있었다던데 그 사람도 나와 같은 심정였을까?




종종 밖에 나가 사진을 찍던 피터. 휴가 내내 그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얘기를 무궁무진하게 들을 수 있었다. 9년 동안 교도관으로 일했다는데 보디빌더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피터의 성격, 말투, 웃음소리. 농담에 실 없는 얘기를 자주 하던 그를 보면서 이 사람이 진정 32살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2주 동안 같이 지내면서 생각도 깊고 참 좋은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었다. 24일날 '드디어!' 라르쉬를 떠나 체코로 돌아가는 피터, 가기 전에 좀 더 알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러고보니 마리줄리, 나, 피터 모두 곧 떠날 사람들이었다. 우리 셋의 공통점이라면 모두들 라르쉬를 떠나는 걸 무지 기뻐한다는 것.. 2주동안 레지던츠와 휴가를 보내면서 느낀 건데 이런(?) 성격의 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선 건강한 정신이 절대적인 요소가 아니란 것이다. 그보다는 '정상적인 사람이 돌아버릴만한 상황에서도 꿋꿋이 제정신을 지킬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난 이 곳이 몸 뿐만 아니라 정신까지도 황폐하게 만들 수 있다는 곳이란 걸 몸서리쳐지게 느꼈다. 이 의견엔 나뿐만이 아니라 피터와 마리줄리도 같은 생각이었다.




길을 잘 못 들어 찾은 바닷가에서 다시 되돌아오는 길. 양떼들이 길을 막고 지나가고 있었다.




8일, 토요일
꺅! 첫번 째 Day off! 기침이 심해져서는 피터와 함께 병원을 찾았다. -_- 문제는 오늘이 토요일이란 것. 원래 있어야 할 간호사, 의사 없이 정기적으로 병원에 와서 발을 치료하는 의사만이 있었다. 헛탕이었다. 하는 수 없이 곧장 돌아와야 했다. 데이오프 때 근처에 있는 Croagh Patrick이라는 산에 오르고 싶었지만 비가 와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길래 코네마라를 지나 Clifden으로 가는 팀에 합류하기로 했다.

코네마라, 클리프튼 오가는 길에 2번이나 들렀던 어느 펍 앞 풍경. 핫초코도 역시나 2번.


날이 흐려서 분위기가 했다. 화창한 날씨보다 훨씬 운치가 있었다. 지금까지도 후회되는 건 사진을 못 찍었다는 것! 구름에 휩싸인 산과, 바다는 그야말로 미스테리였다. 정, 말, 멋졌다.




클리프튼에 도착, 레스토랑에 들러 차를 마시고 나오니 날이 화창했다. 오늘만큼은 파란 하늘이 참으로 원망스러웠다. 피터와 나 둘다 아침에 봤던 풍경을 잊지 못한 터라 루이스버그로 돌아오는 길을 기대했는데 실망만 가득이었다. 무조건 화창한 날이 좋은게 아니란 걸 처음으로 깨달았다.




코네마라, 혹은 그 근처




피터와 메리


돌아오는 길에 찍은 사진들. 사진 속 풍경이 멋져 보일 수도 있지만 아침에 비하면 이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에게, 이게 뭐야!' 과연 우리가 똑같은 길로 되돌아가고 있는건지 의심이 들 정도로 달랐다. 모든 풍경이 뚜렷해지니 오히려 밋밋해 별로였다. 




개인적으로 킬라니(Kilarney)에서 갔던 Gap of Dunloe가 훨씬 멋진 듯






저녁엔 근처 바닷가를 찾았다. 와우. 완전 겨울이었다. 춥기까지 했다. 서핑을 하는 사람들이 대단할 정도로. 피터가 수영복을 챙겨와서는 수영을 하겠다며 발을 담궜다. 그리고 곧장 나와서 옷으로 갈아입고 돌아왔다. '등치에 안 맞게 뭐하는 거야!' 'It was impossible!' 옷을 입고 있어도 춥다나 뭐라나..




Posted by Bori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