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where I shine

2009. 9. 5. 19:32 from 라르쉬 코크
겨울
침대에 기어들어가면 벌써 으슬으슬하다. 가을이다. 여전히 는 내리고 바람이 세차다. Mayo의 가을은 7월부터 시작되는 듯 싶었는데 거기는 지금 겨울이려나? 

 

내 방, 난장판이다. / 오피스의 한쪽 벽엔 몇년 전의 안크리 사진이 걸려있다. 한국 분도 한명 있다.





메리가 선물해준 Good luck 카드와 겨울 양말


메리
화요일이었나.. 저녁을 기다리고 있는데 메리가 갑자기 누런 봉투 하나를 건냈다. 정성껏 쓴 카드와 함께 양말이 들어있었다. 알아보기 힘든 필체라 메리가 2번이나 읽어줬는데 내가 다시 읽어보려니 또 모르겠다. 웨스트포트에 갔을 때도 작별 선물을 주고 싶다며 마리줄리와 피터에게 선물을 주었던 메리. 'You were always nice to me.' 나를 생각하면서 선물을 고르고 편지를 썼을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니 그 따뜻한 마음이 나에게 온전히 전해지는 것 같았다. 


수즌
선물을 건네는 메리를 보면서 수즌이 'I will do something for you.'라고 말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였다. 워크샵에서 일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야니가 -오리엔테이션 위크를 보내고 있다- 위빙 방에서 틀을 이용해 스카프 짜는 법을 익히고 있길래 양초를 팽개치고 위빙 방으로 들어갔다. 이리저리 둘러보다 탁자에 널부러져 있는 비즈가 눈에 들어왔다. 자리를 잡고 팔찌를 만들기 시작했다. 위빙 프로젝트 리더에게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하니 좋은 걸로 하나 만들어 가란다. 하하, 하나가 아니라 3개나 만들어 왔다.



Weaving 방에 가서 만들어 온 팔찌 / 화요일마다 안크리에서 저녁을 먹는 비다!


오후 5시, 'Are you ready to go?' 수즌의 갑작스런 말에 2층으로 올라가 후다닥 옷을 갈아입었다. 워크샵 Tea break 때 선물로 를 대접하겠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그게 오늘인줄은 몰랐다. 알아듣기 힘들어서 아리송했다. 날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 같아 오늘이냐고 되묻지 않았다.

테스코에 가면 항상 들리는 Jay talyer(?응?)에서 딸기맛 밀크쉐이크와 초콜릿이 두껍게 발려진 과자를 시켰다. 반을 나누어 먹었는데도 배가 불러서 아까운 밀크쉐이크를 반이나 남겼다. 배가 빵빵-, 곧 저녁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소화를 시키려고 뒷마당을 15분 동안 돌았다. 그래도 배가 불러서 결국 저녁도 반이나 남겼다.





난 벽난로가 참 좋다!



현관에서 2층 올라가는 길, 왼쪽 끝에 내 방이 있다. 건너편은 데티의 방




Welcome to An Croi-!


Prayer
화요일엔 안크리에서 기도를 가졌다. 이슈트반이 음악과 글을 준비하고, 차와 쿠키도 마련해두었다. 거실에 3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구겨져 들어왔다. 안크리, 안쿤, 안젤락, 도커스, 수나스 사람들.. 처음 Prayer를 경험하는 새로운 봉사자들은 이 많은 사람들이 한 공간에 들어차 있다는게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를 하는 시간, 메리와 수즌이 를 위해 기도해줬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은지의 새로운 여정을 위해 기도를 드립니다.'





저 끝에 빨래 방, 그 바로 왼쪽엔 뒷마당, 오른쪽은 주방, 아래 왼쪽은 거실, 건너편은 작은 거실



거실의 모습, 뒷마당이 보인다 / 오피스로 향하는 길, 첫 방은 손님방 (내가 쓰던 방), 건너편은 Jim의 방




오피스, 냉동고와 컴퓨터, 각종 서류가 있다. 지금 내가 일기를 쓰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미녀들의 수다?
화요일 아침엔 Assistants' SharingFormation이 있었다. 화요일을 싫어하게 만드는 두 녀석. 오늘은 새 봉사자들이 갖는 시간이기 때문에 서로를 알아가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과거에 ㅇㅇㅇ을 했던 적이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라는 질문 16개가 적힌 종이를 한장씩 받아들고, 해당되는 사람의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돌아다니며 모든 사람들에게 일일이 물어봐야 했다.

아들이 3명 있는 사람, 중국에서 1년동안 있었던 사람, 부모님이 라르쉬에서 일하는 사람, 레슬링 코치였던 사람, 미국 라르쉬에서 8개월동안 있었던 사람 등등 서로에 대해 몰랐던 것들을 많이 알 수 있었다. 내가 처음에 라르쉬에 왔을 땐 나만 새로운 봉사자였기 때문에 아무래도 사람들, 라르쉬와 생활 패턴, 레지던츠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자리가 거의 없어서 적응하는 것도 느릴 수 밖에 없었다. 괜시리 억울했다.




큰 거실, 팀미팅을 하고 매일 저녁 사람들과 얘기하고 텔레비전을 보는 곳이다. SKY TV가 없는 게 안타까울 뿐.


쉬는 시간 후엔, 서로를 잘 모르는 사람들끼리 마주보고 앉아 서로에 대한 질문을 했다. 그리고 다시 빙- 둘러앉아 모두에게 자신의 파트너를 소개했다. (이런거 정말 싫다!) 마무리는 라르쉬에 대한 30분 간의 지루한 소개로 끝마쳤다. 휴. 언제나 말이 끊이지 않는 캐티. 이슈트반도 뒤지지 않는다지.

오늘 점심은 도커스에서 먹기로 했다. 데티, 테사, 야니, 브리트니와 함께 쏟아지는 비 속에서 도커스로 향했다. 리나와 케리가 이미 점심을 먹고 있었다. 4명이 사는 그 작은 집에 여자 7명이 모여 북적북적 샌드위치를 만들고 수다를 떨었다. 라르쉬 얘기, 오늘 아침에 가진 쉐어링 얘기, 새 봉사자들이 보는 캐티와 루벤의 첫인상, 레지던츠와 있을 때 조심할 것들, 휴가 얘기...

아침부터 4시까지 사람들 속에 둘러싸였더니 피곤했다. 쉬는 시간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야니와 브리트니에게 윌튼 쇼핑센터를 보여주러 페니스와 테스코를 찾은 후, 매달 1일에 받는 용돈을 확인하기 위해 은행에 들렀다. '꺅! 용돈 들어왔다!' 이리하여 지금까지 모은 돈, 약 290만원! 음키키. 몇달 뒤에 싸그리 없어질 돈이란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프다.


 


주방과 식당, 빨래방 오른쪽에 있다. 사람은 많은데 주방이 하나인게 조금 아쉽다.




안크리, 아이리쉬로 The heart라는 뜻이란다. '집이란 내 마음이 있는 곳'  
-이라고 해놓고 마음보단 몸을 묶어놓는 것 같아 힘들기도 했다.



혼란스러움
'이 다음엔 뭘 해야하지?'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몸 편한 곳에 있다보니 생각까지 풀어졌다. 라르쉬에 오기 전 생각하고 있던 방향이 해져 잘 보이지 않는다. '잊어버렸다는 것은 그만큼 내게 진정으로 소중한게 아니었단 말일까?' 또 복잡해진다.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곳, 내게 중요한 것에서 한동안 떨어져 있다보면 그 감정을 잊어 버리기 쉽다.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하기 위해선 그 무언가로부터 정기적인 자극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 편하고 (어쩌면) 마음까지도 편할 수 있는 이 곳, 그동안 관심 가져왔던 기아, 가난, 고통.. 세상은 참, 웃긴 곳이다.




현관 앞, 안크리의 차 2대 중 하나인 레드 밴! / 이층에서 내려다본 현관





커뮤니티 휴가를 떠나기 전 찍어두었던, 내 방에서 바라본 풍경.



This is where I shine
라르쉬 캐나다 홈페이지를 뒤적거리다 누군가의 경험담에서 이 구절을 발견했다. 내가 그토록 무언가를 찾아다니는 이유가 이 말 한마디를 내뱉기 위해서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내가 빛날 수 있는 곳, 언제쯤 찾을 수 있을까? 영원히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너무 집착하는 건 아닐까. 어쩌면 적당히 즐거울 수 있는 곳을 찾는게 현명한 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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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ri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