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중에서 어떤 삶이 가장 나에게 적합한지를 찾아내고, 나아가 실현하는 게 현재 내가 갖고 있는 목표다. 그리고 내가 내민 번째 발걸음은 이 곳, 아일랜드의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코크(Cork)라는 곳이다. L'Arche(라르쉬)라는 공동체안에서 과연 무엇을 얼마만큼 배워가게 될까 고민했던 것만큼, 생각과는 조금 다른 현실에 약간은 실망한 것도 사실이다. 

처음 내가 이 곳에 오기 전, 먼저 알게 된 곳은 수년 전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캠프힐(Camphill)이라는 곳이다. 그 뒤로 몇번 더 방영되어 현재는 많은 한국인들이 알고 있는 단체이기도 하다. 그만큼 한국인의 비율도 많지만 대부분은 독일인이다. 독일에서는 남성이 군대(1년)를 가는 대신 봉사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도 독일인이 거의 대부분이고 그 다음이 프랑스, 몇몇 아일랜드, 에스토니아, 1명의 한국인이 있다. (독일인들의 발음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여기 사람들이 이상한건지 내 귀가 이상한건지 아직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게다가 우리집 독일 여자애는 캐나다에 있던 적이 있어서인지 발음이 굉장히 좋다. 의외의 복병은 우리집 하우스 리더! 내 억양이 점점 에스토니아어로 변하고 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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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기 전, 캠프힐 카페에서의 생활기를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바쁘겠구나.."였다. 캠프힐은 대부분 외곽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그들끼리 모여서 생활하고 농장 및 정원, 워크샵이 한군데에 모여있다. 때문에 봉사자들은 집안일도 하면서 워크샵 일도 도운다. 돌아가면서 아침 혹은 점심, 저녁을 하며 들은바에 의하면 아침에 사람들을 깨우거나, 씻기기도 한단다.

하지만 내가 있는 곳은 다르다. (각각 장단점이 있는 듯) 라르쉬 코크는 총 5개의 집과 워크샵 건물이 있다. 아일랜드에서 2번째로 큰 Cork라는 도시안에 가깝게 혹은 조금은 덜 가깝게 모여 살고 있으며, 집마다 자가용을 소유하고 있다. (우리집 차는 망가져서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지만) 일 해야할 농장이나 헛간(?)도 없고, 봉사자들도 2종류로 나뉘어져 있어서 워크샵 일을 돕는 봉사자가 따로 있다. 하지만 필요에 의해 하우스 봉사자들(집안일을 책임지는)도 워크샵 일을 도울 수 있다고 한다.

아무런 미팅과 약속이 없는 이 곳의 하우스 봉사자들의 일과는 대략 이렇다. 아침 8시쯤 아침식사, 청소 및 기타 집안일을 한 뒤 12-1시쯤 점심, 1-4시 개인시간, 5시쯤부터 저녁 준비를 해서 7시쯤 저녁식사, 8시쯤 부터는 다시 개인시간. (우리집은 여자 3-4명이 모여 밤 9시부터 시트콤 '프렌즈'를 챙겨보고 있다.) 다른 집은 모르겠지만 아침은 시리얼로 떼우고, 점심은 알아서 해결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음식을 하는 건 저녁밖에 없다. 어찌보면 백수의 삶과 다름없다. 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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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은 대부분 이렇게 한가롭게 보내고, 주중에는 아침 저녁으로 여러 회의라든지 종교행사, 기도, 훈련, 다른 집에 원정나가기(?), 장보기 등의 일과가 추가된다. 그래서 어떤 날은 굉장히 할일이 없기도 하지만 또 어떤 날은 하루가 바쁘게 지나간다. 또 한가지, 우리집엔 3명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모두들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지 않고, 1명을 제외한 어르신 2분은 그다지 활동적이지 않아서 다른 집에 비해 더 조용하고 할 일이 없다. 좋은건지 나쁜건지.. 

가장 단순하고도 기본에 충실한 하루하루를 보내다보니 이곳에서 보는 세상은 참 평온하게 느껴진다. 한국에서 느꼈던 높은 실업률과 조급함, 미래에 대한 걱정, 불안, 초조, 뒤쳐지고 있다는 압박감, 돈, 무언가를 해야하고 좀 더 바빠져야 한다는 복잡한 생각들은 전혀 딴 세상 이야기가 되버렸다. 난 이 곳에서 돈을 벌 필요도 없고, 매일이 바쁠 필요도 없다. 얼마전 캐티와 회의를 가졌을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여기 오면 내가 해야할 일이 굉장히 많을 줄 알았는데 막상 오니까 할일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실제로 그렇다. 그래서 처음 며칠간은 '내가 없어도 될 것 같은데 여기 왜 있는걸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실망한 것도 사실이고. 하지만 그녀는 이런 대답을 해줬다. '처음엔 모두들 그런 생각을 갖고 오지. 하지만 일부러 바쁘게 지낼 필요도 없고, 무언가를 꼭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단다. 그냥 단지 그들 에 있어주기만 하면 되는거야.' 

그들이 가족이라고 느낄 수 있게끔 옆에 있어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할 일이다. (하지만 현재 내가 가장 어렵다고 느끼는 것이 바로 그거다!) 일부러 바쁘게 살 필요는 없다. 허둥지둥 사는 것이 내가 싫어하는 삶이기도 했으니. 지금은 이런 방식도 있구나.. 하고 조금씩 이해하고 있는 중이다. 

좀 더 높은 목표를 향해 숨가쁘게 달려가는 것만이 진정한 인생은 아닐 것이다. 난 이미 그런 삶은 안중에도 없기에 내 마음이 가는대로, 하지만 누구못지 않게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아갈 것이다. 궁금하다. 1년 뒤의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과연 어떤 길을 바라보고 있을까..



+ 재미없는 글을 끔직하게도 길게 썼다. 이 글을 다 읽을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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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ri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