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려서부터 전화 공포증이 있었다.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휴대폰이 차츰 사용되기 시작했으니 그 전에는 친구에게 전화를 하려면 그 친구의 집으로 연락을 해야 했다. 그럴때면 난, 친구가 아닌 다른 사람이 전화 받는 것을 두려워 했다. 나에겐 전화 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다행히도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가끔은 전화 걸기 전에 심호흡을 해야 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공포증이 있었던 탓인지 전화기와는 별로 친하지 않다. 남들은 휴대폰 없인 못산다는데, 난 없어도 상관은 없다. 말수도 적은 편이라 전화로 수다를 떤다는 건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일까, 주인 잘못 만난 내 손전화가 애처롭다.
'용건만 간단히'
나는 꼭 필요할 때만 전화를 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용건 없는 전화를 할 때면 굉장히 어색하고 이상했다. "이 사람은 용건도 없는데 전화를 왜 하지?" 그래서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안절부절 못하기도 했다. 갑작스레 연락을 했던 한 중학 동창 녀석과 근래 자주 전화를 하는 한 녀석 덕분에 어느정도 적응은 됐다. 이것도 다행이다.
난 인맥관리를 잘 하지 못한다. 전화 공포증이 어느 정도 작용한 것도 있지만, 그 전에 난 새로운 만남을 싫어했다. 처음보는 사람들은 나에게 "굉장히 조용하시네요."라고 말할 게 분명하고, 난 무슨 말을 해야할지 머리 터지게 고민만 하고 올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할 말이 없는 걸 어쩌라고??" 그래서 난 할 말을 쥐어짜내는 대신 '속 편하게'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나에게 스치는 인연일 뿐이었다.
3번째 다행, 그동안의 여행과 봉사활동 경험으로 이 점도 나름대로 많이 고쳐졌다.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다. 다른사람들이 보기엔 여전히 쑥쓰러워 하는 녀석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처음 보는 이에게 이런저런 말을 한다는 건 나에게 큰 용기와 생각을 필요로 했다. 난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말을 쏟아내는 사람의 머릿속이 정말 궁금하다. 무슨 할말이 그렇게도 많을까. 나에게 있어 실험대상이다.
아무렇게나 만들어지지 않는 '인연'이지만 소홀히 생각되기는 쉬운 것 같다. 사람에도 서툴고, 말도 서툰 나는 인연을 한번 지나가면 끝인 1회용품처럼 생각했다. 인연이 잠시 끊겼다면 거기서 끝이었다. 그 사람들에게 안부문자와 전화를 해야한다는 걸 알지 못했다. 대학생이 되고도 몇년이 지나서야 알았다.
한번 밖에 없는, 늘 그리운 학창 시절의 오랜 친구들,
인도에서 만나 짧게 혹은 길게 여행을 함께 했던 사람들,
여러 봉사활동을 하면서 함께 웃고 떠들던 사람들,
새내기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
짧지만 새롭고 즐거웠던 동아리 사람들,
가장 그립고 후회되는 5개월의 시간 그리고 학원 사람들...
난 어째서 이들을 내치려고만 했을까.
그리우면 닿게 해야 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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